추석연휴에 미국여행을 가게 되면서 비행기에서 뭘할까 생각하다가 책 크레프톤웨이를 읽기로했다. 초기 창업의 과정이 생각보다 자세하게 묘사되어있었고 대표가 작가에게 회사 메일을 줄 정도로 솔직하게 이야기를 담아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정작 성공과 관련된 베틀그라운드의 이야기는 책의 마지막 10% 정도에만 해당하고 나머지 90%는 베틀그라운드가 나오기 전까지의 실패 스토리로만 이루어져있다. 경영진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실패로 정의한다면 블루홀에서 만들어진 몇개의 모바일 게임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실패한 게임이며 그 내용이 책의 90%에 해당한다. 장병규는 첫눈을 창업하고 엑싯하고 난 뒤 찾아온 무기력함과 글로벌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블루홀 스튜디오를 창업했다고 한다. 게임산업에 대해 몰랐지만 엔씨소프트에 재직 중이던 박용현, 황철웅, 김정한, 박현규의 게임 전문가들과 경영 파트너인 김강석과 함께 창업했다. 이 팀은 MMORPG의 명가라는 비전과 경영과 제작의 분리, 대규모 제작을 정해진 예산과 시간에 완수하는 것을 원칙을 세워 일을 시작했고 3년에 300억을 투자하여 MMORPG 게임을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일을 시작했다.

장병규의 의사결정 루틴

장병규가 김강석에게 공동창업을 제안하기 전 심사숙고의 시간을 가졌는데, 이는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장병규가 가지고 있는 의사결정 루틴이었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의사결정을 묵히는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고민이 생기면 결정을 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중요한 결정은 2~3주, 덜 중요한 결정은 1주 정도 묵혀두고, 도중에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 하지 않고 그 시간이 지나도 같은 마음이라면 진행한다고 한다. 그리고는 후회하지 않고 결정한 뒤에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결과에 책임을 진다고 한다. 요약하면 미리 고민하고, 충분히 묵혀두고 그래도 하고 싶다면 한다는 프로세스다. 생각보다 자기 자신이 이 선택에 후회를 하지 않을 것인지 짧은 시간에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나 역시도 한다고 했다가 번복했던 일이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땐 대부분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의사결정을 묵히는 시간동안 마음이 계속 편안한지 확인하는 것은 꽤 타율이 높은 프로세스인 것 같다. 나중에 시도해봐야겠다.

게임시장과 게임제작

게임 산업은 일반적인 IT 비즈니스와 다른 방식으로 돌아간다. 게임은 감성적인 부분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흥행 비즈니스이고 그 감성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재미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마다 느끼는 재미가 다르다는 것이다. 게임의 흥행이란 각자 가지고 있는 재미에서 공통의 재미를 찾아 올리는 종합 예술에 가까웠다. 제작자들은 각자 확신과 기대에 게임의 재미를 만들지만 그 게임의 흥행 여부는 시장에 출시하기 전까지는 알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한달에 수천 종의 게임이 출시되지만 대부분 이름조차 모르고 사라지며, 영화나 아이돌 산업처럼 대박 아니면 쪽박의 운명을 타고난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스타트업은 소위 존버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모든 시장에서 적용되는 말일까? 어떤 시장이든지 상관없이 잘 존버만 한다면 결국 성공할 수 있는 것일까? 이건 좀 생각해봐야할 문제같다. 이제부터는 책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들을 몇개 정리해두고자 한다.

(p. 208) 시장에 대하여 중. 게임은, 대중 엔터테인먼트는 다소 미묘하다. 고객은 이성적, 합리적일 때도 많지만, 감성적, 본능적일 때가 더 많다. 고객의 취향을 설명하기 힘든 경우도 많고, 고객이 회사의 예측과 다르게 가성비를 따지지 않고 매우 큰돈을 치를 때도 있다. 대중 엔터테인먼트에서는 대세감도 필요하다. 남들이 재미있다고 좋아하면 따라서 즐기는 사람도 많다. 즉, 고객 한 사람부터 시작한다는 원론을 실행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 어떤 고객은 늘 하던 게임만 계속하고, 또 다른 고객은 새로운 게임에만 호감을 보이며 발매일이 꽤 지난 게임을 시작하기 꺼릴 수도 있다. 나라별로도 다르다. 문화의 차이가 있고, 재미와 새로움을 느끼는 바가 다를 수 있다. 한국 차, 미국 차, 독일 차, 일본 차 등 자동차 간의 차이보다 한국 게임, 미국 게임, 독일 게임, 일본 게임 등 온라인 게임 사이의 차이가 더욱 크다. 그럼에도 고객 한 사람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한다. 경쟁 전략의 중심에도 고객이 있다는 점을, 고객의 요구가 파편적일수록 더욱 고객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나라에 진출한다는 것은 해당 나라의 고객을 이해하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요구한다. 한편 어떤 회사를 꾸리건 간에 회사의 내부 구성원 또한 고객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한다.

(p. 386) 장병규는 모든 문제가 게임업이 비상식적이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고객을 만나기 전까지 게임의 흥행은 알 수가 없다. 예측을 할 수 없는 흥행 사업이기에, 타석에라도 많이 서야 한다는게 그의 지론이었다.

게임 퍼블리싱이란 책을 출판하듯 게임을 시장에 내놓는 작업이다. 퍼블리셔가 출판사라면, 게임 제작사는 작가다. 출판사가 작가에게 원고료를 지급하듯 퍼블리셔는 퍼블리셔는 게임 제작사에게 돈을 내고 판권을 확보한다. 퍼블리셔는 일반적으로 마케팅, 유통, 현지화 등을 맡아 게임을 시장에 내놓는 역할을 하고 게임 개발에 자금을 지원하기도 한다. 개발사 입장에서는 게임 개발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퍼블리셔와 게임의 성공으로 거두는 과실을 나누어야 하긴 하지만, 출시한 게임이 실패했을 때 발생하는 위험도 분산하는 효과가 있다. 게임을 개발하는 도중에 파트너인 퍼블리셔로부터 조언을 받을 수도 있고, 계약 대금으로 개발비를 충당하는 것도 가능하다.

(p.91) 아트팀을 총괄하는 황철웅은 하루 종일 책상에 파묻혀 수백 장의 그림과 그래픽을 쏟아냈다. 황철웅은 리니지 2 아트디렉터로 6년간 일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3D 아트 전문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유저들은 게임으로 불러들이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그래픽이었다. 화려한 효과와 미려한 외관에 게이머들은 매혹되고 아름다은 캐릭터는 게임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끌어 올린다. “출시 초기 흥행은 그래픽이, 인기 유지는 기획이 담당한다"는 게임업계에서 진리처럼 떠받드는 명제 가운데 하나였다. 그에게 그래픽 작업이란 극대화(maximization)과 최적화(optimization) 사이에서 벌이는 줄다리기와 같은 것이었다. 그패기 기술 발전 수준을 유감없이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고객이 보유한 보편적인 성능의 컴퓨터에서 무리 없이 구현될 수 있게 수준을 조정해야했다.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면서 서버 개발자를 비롯한 프로그래머가 이를 소화할 수 있도록 조율해야했다.

(p. 119) 투자에 대하여 중. 투자를 할 때 창업자가 유념할 것은 “모든 사람은 잠시 속이거나 몇몇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격언이다. 투자는 ‘많은 사람을 잠시 속이는 행위’ 처럼 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속이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심지어 창업자 스스로가 자기 합리화를 하기 쉽다. 하지만 투자를 받은 사실과 투자 이후의 과정과 결과는 계속 남는다. 트랙 레코드는 쌓여간다. 평판은 쌓여간다. 평판 때문에 재도전이 힘들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 자기합리화는 창업자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든다. 투자는 믿음과 신뢰에 관한 행위이며, 함께 협업하는 사회에서의 평판과 이력을 쌓아가는 행위다. 투명한 대화, 일관된 행동, 믿음과 신뢰, 상호 존중 등이 계약서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말자.

테라 개발실장의 사임과 구조조정

테라는 경영진과 제작자 사이의 충돌로 인해, 출시 시기가 늦어졌고 박용현을 제외한 공동 창업자 다섯가운데 박용현의 사임에 찬성하여, 2010년 10월 박용현은 테라 개발 실장에서 사임했다. 그 빈자리를 황철웅이 대신하게 되었는데 아트 책임자로 일해온 터라 퍼블리셔와의 협력한 경험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김강석이 테라를 출시하고 초기 운영을 안정화하기까지 퍼블리셔인 NHN과 소통하는 일을 맡았다. 테라는 출시 직후에는 좋았으나 빠르게 소진되는 컨텐츠 때문에 리텐션이 나오지 않았고 결국 2011년 7월 황철웅이 테라 개발실장에서 물러나게된다. 박용현이 사임하면서 떠밀리듯 테라의 수장을 맡게 되었는데, 마치 장병규, 김강석, 박용현으로 비롯된 오물을 뒤집어 쓴 느낌이었다. 김강석은 황철웅을 대신하여 테라 개발실장을 맡게 되었다. 뭔가 이쯤에서 경영과 제작의 분리가 완전히 무너진 것처럼 보였다. 2012년 하반기 재무팀이 회사의 위기 상황을 알렸고 전체 직원 260명의 인건비를 더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20% 정도에 해당하는 50~60명을 내보내야 블루홀이 살수 있었다. 희망퇴직 제도를 준비했고 총 희망퇴직자는 56명이었다. 회사는 사업부서 내에 있던 한 팀을 통째로 없애겠다는 통보도 직접 해야했고 장병규는 회사를 욕하거나 처지를 견디지 못해 눈물을 흘리며 나가는 직원을 보는건 괴로웠다고 했고 그는 언제까지 경영자의 삶을 살게 될지 모르겠지만, 구조조정의 상처를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리라는 것만은 알겠다고 생각했다.

장병규의 번아웃

이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스타트업 업계에 있으면서 장병규님의 인터뷰를 볼 때마다 저분은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었을까 싶을만큼 워커홀릭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p. 249) 2014년 늦은 여름 장병규가 김강석을 회사 밖으로 불러내고 맥주를 마시면서 “지쳤어요. 번아웃됐습니다.” 라고 말했다. 장병규는 잠시 침묵한 뒤에 “블루홀을 매각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성공했다고 말은 못 하겠지만, 재무적으로 투자자들에게 나쁘진 않은 옵션이에요. 대표님이 힘들다고 하면 매각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장병규는 스스로를 하얗게 타버린 재로 여겼다. 무슨 짓을 해봐도 소용없다는 상실감과 허탈함에 휴식을 모르던 사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업무를 놓았다. 300억 원 상당의 개인 은행 예금을 담보로 잡히면서까지 돈을 쏟아부었는데, 회삿돈이 바싹 말랐다. 회사에는 테라를 이어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 W가 있었고 김강석은 이 프로젝트 예상 출시일이 2017년이고 3년 정도는 더 빡세게 일해보겠다고 했다. 그 때까지 회사가 살아야하니, W를 출시하기 전까지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고 출시하면서 회사의 수명을 늘리는 것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게임 업체를 인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돈이 부족하니 블루홀이 보유한 주식을 인수 회사 주식과 교환하는 방식을 써서 다른 게임업체를 합병하자는 방안을 냈다. 그렇게 외부 제작사와의 적극적인 연합을 추구하게 되었고 이에 블루홀 2.0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블루홀 2.0의 키워드는 연합과 생존이었다. 그렇게 2015년에는 블루홀스튜디오에서 블루홀로 사명을 변경하고 김창한의 지노게임즈를 인수하였다.

베틀그라운드의 시작

2015년 11월 김강석은 김창한 PD에게서 이번 주에 한시간 정도 시간을 내주면 프로젝트 제안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러가겠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그게 배틀그라운드였다. 경영진의 설득과정을 거친후 2016년 3월 14일에 개발을 시작했고, 중간 평가는 7월, 3차평가는 10월 그리고 최종적으로 2017년 일사분기 출시가 목표였다.

속도가 완벽함을 이긴다.

김창한은 20명 개발팀의 단기 목표를 6주 단위로 설정했고 하나의 목표달성을 위해 6주 동안 달리는 사이클을 뒀다. 스프린트를 하는 개발자의 하루 일과는 10 to 10이 기본이었다. 오전 10시에 일을 시작해 오후 10시에 마무리했다. 6주를 전력질주한 뒤로는 2주간 심호흡과 준비 운동을했다. 2주동안 개발 결과를 테스트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다음 질주를 준비했다. 김창한에게 BRO 프로젝트는 속도 전이었다. 속도가 완벽함을 이긴다. 인텔 CEO 브라이언 크르자니크가 한 이 말을 김창한은 팀의 행동 강령으로 못박았다. 개발에 시간이 걸리는 가장 큰 이유는 개발한 것을 엎는 일이 많기 떄문입니다. 처음부터 설계를 자세하게하고 대신 작은 규모로 빌드를 만들어 계속 테스트해갑시다. 1년 안에 개발을 끝내고 빠르게 시장에 진입합시다. 금방 변하는 사용자의 취향과 호흡을 따라갈 정도의 속도가 필요합니다.

인재와 조직구조

(p. 337) 인재에 대하여. 인재의 업무는 시행착오와 도전의 연속이다. 인재를 둘러싼 환경도, 인재가 사용하는 기술도 시간에 따라 빠르게 변한다. 꾸준한 성과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학습해야 한다. 큰 성과는 대부분 협업의 결과물이기에, 인재는 협업에 강한 사람이어야 한다. 경험한 만큼 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배우고 소통하려는 자세가 인재의 덕목이다. 지식 산업에서 실패는 흔하다. 시행착오는 더욱 빈번하다. 시행착오와 실패는 쉽게 관리되는 영역이 아니다. 제조업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6시그마(기업에서 완벽에 가까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려는 목적의 품질 경영 기법)는 지식 산업의 핵심이 아니다. 지식 산업은 인재의 책임, 자율성, 의지 등이 중요한 산업이다. 첨단 제조업도 제조업이라는 점을, 제조업과 지식 산업은 근본이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한다.

(p. 383) 조직과 팀은 신뢰 위에서 올라가요. 법 위에서 올라가지 않아요. 법이라는 건 신뢰가 지켜지지 않을 때를 대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입니다. 조직은 기본적으로 신뢰라는 강점을 기반으로 올라가야 돼요.

(p. 389) 장병규가 진단하기에 품격 있고 검증된 제작 리더십이 드문 이유는 게임이란 제품의 기본 속성 때문이었다. 게임의 본질은 재미다. 재미는 감성이며 본능이지, 이성이나 합리가 아니다. 이떤 사람이 재밌게 느끼는 요소가 어떤 사람에겐 전혀 아닐 수 있다. 그렇기에 재미, 감성, 본능은 대화를 통해 공감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하물며 대중의 취향을 저격하는 재미를 만드는 사람은 어떻겠는가. 작가 한 사람이 소설을 써내듯, 혹은 영화 감독 한 사람이 촬영 현장을 총괄하듯, 소수의 리더십이 제작을 이끌 수 밖에 없는게 게임업의 본질이다. 그렇기에 독재적인 성격의 PD가 흔하게 등장한다. 더구나 MMORPG는 복잡하고 거대한 물건이다. 이 세상을 닮은 가상 세계를 창조하는 일은 그만큼 여러 사람의 노력을 요한다. 문제는 게임 속 작은 부분 하나를 바꾸면 전체 세계가 흔들린다는 것. 그러므로 제작 책임자는 의사결정을 다른 이와 함께 나눠 하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제작 리더십엔 대가가 따르고 제작 리더십으로 살기 위해선 인생을 걸어야한다.

(p. 392) 게임 제작은 제작 리더십이 독립적으로 하는게예요. 경영진은 이를 견제하고요. 경영진이 견제할 때는 일상 업무를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제작이 약속한 중간 결과물인 마일스톤을 기준으로 견제를 합니다. 이걸 제대로 할 수 있느냐, 못 하느냐를 저희가 배워나가야 합니다만, 궁극적인 지향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p. 400) 장병규는 평가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는 게임 제작자들과 평가 방식을 논의할 때마다 늘 당황스러웠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조직 구성원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게 그의 기본 생각이었다. 나는 열심히 했다. 나는 만들어달라는 결과물을 잘 만들어줬다 란 말은 장병규 귀에 고객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나는 상관이 없다로 들렸다. 평가는 늘 매출이나 트래픽과 같은 고객 지표와 연동되어야 한다. 지시에 잘 따르는 구성원을 높게 평가하는 조직 수장을 최악이라 생각하면서도 제작 리더십마다 지닌 철학에 따라 평가 방법이 다를 수 있다는건 인정했다. 무엇보다 평가 원칙은 고정되어선 안되고, 시대와 사람에 맞게 계속 달라져야 한다.

(p. 409) 장병규의 마음속에는 흥행 사업을 영위하는 한 지속 가능한 회사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연합을 추구해야한다는 확신 비슷한 무언가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는 블루홀을 구성하는 주체인 투자자, 제작 리더십, 다수 구성원 입장에 서보며 연합을 바라봤다. 투자자의 관점에서, 투자자는 여러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게임회사에 투자하고 싶어한다. 투자자는 흥행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의 단계적인 성장을 가정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스타트업은 단계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시리즈 A, B, C 투자자로 표현되는 투자 생태계가 순차적으로 작동하지만, 흥행 사업은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회사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여러 제작 라인에 투자를 해야 한다. 과장해서 말하지만 여러 제작 라인에 투자하는 회사가 없다면 흥행 사업은 발전할 수 없다는게 장병규의 지론이었다.

제작리더십 입장에선 트랙 레코드를 쌓기 전까지는 연합에 속하고 싶어 하지만, 반대로 성공적인 트랙 레코드를 완성한 이후엔 연합에 남을 이유가 없다. 제작 리더십은 자신이 만든 성과를 연합과 나눠야 하기 때문에 독립해 나가려는 의지를 갖게 될 터였다. 장병규는 근본적인 대책을 세울기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제작 리더십들에게 주식 인센티브를 지급할 때 형평성을 고려했고, 합병을 타진할 때도 평생 함께 제작할 것이란 믿음이 약하면 논의를 중단했다.

배틀그라운드의 성공

(p.522) 배틀그라운드는 글로벌 서비스를 시작한지 16일 만에 최단기간 100만 장 판매 기록을 쓰면서 괴물 게임으로 올라섰다. 감창한은 이 소식을 팀에 전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우리의 게임은 새로운 환경과 장르에서 이제 선두에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 스스로가 세계 최고임을 증명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1년에 해낸 걸 두고 누군가는 쉽게 이야기할지 모릅니다. 운이 좋았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맞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시작할 때의 비전에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배틀로열, 트위치, 시청자, 글로벌 서비스, 새로운 장르, e스포츠, 빠른 개발, 커뮤니티 스노우볼이 그 증거입니다.

최고를 위한 전략은 심플합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혁신하고 최고의 퀄리티를 유지하면 됩니다. 최고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복잡하고 얕은 수를 사용하는 겁니다. 최고가 될 수 있다면 다른 복잡한 것을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심플하게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듭시다.

(p. 531) 지금 우리 자신도 놀랄 만한 결과를 보고 있지만 이것이 단지 우연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스트리머, 관객, 배틀로열 장르의 가능성을 포착해, 우리가 잘하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최고의 속도로 개발하고 커뮤니티를 키워온 결과입니다. 1년 동안 우리는 주말 외부 테스트를 10회를 통과했고 거의 매주 내부 플레이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CBT 3개월 전에 방향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개발을 강행했었습니다. 매번 테스트 일주일전까지도 테스트를 연기하지 않고 강행하는게 맞는지를 두고 수백, 수천 번 고민했습니다. 팀원들은 게임 방향을 두고 매일 싸웠고, 결론이 나지 않으면 제가 강제로 결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게임 망한다"는 이야기를 저에게 직접 전달한 사람이 여럿입니다. 누군가는 비전을 믿었고, 누군가는 의리 때문에 누군가는 이곳이 단지 직장이라는 이유로 자리를 지켰고, 누군가는 비전이나 일하는 방식에 동의를 하지 못해서 팀을 떠났습니다.

개발하고 테스트하고 유저에게 선보이기 전까지는 실제 가치를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대중은 우리보다 수가 많고 더 큰 창의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도전과 개발 속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고객이 만드는 커스텀 게임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본적인 기능을 제시하면 고객은 더 나은 것을 역으로 보여줍니다. 이것이 우리가 진화하는 방식입니다.

요약

p.381쪽의 게임업의 숙명, p.413쪽 저는 오너가 아닙니다 부분은 다시 한번 더 읽어보자. 특히 황철웅님이 느낀 책임감과 지키고 싶었던 자존심, 치욕을 느끼면서도 일을 해야하는 현실을 많이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고 김창한님이 경영진을 설득하는 과정이 일의 일부라는 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경영진과의 여러 갈등들로 울분을 삼키는 것들이 고스란히 책에 나타나있어 더 몰입하여 볼 수 있었다. 사업을 아직 하고 있는 지인은 이 책을 읽다가 고통스러워서 더 이상 읽지 않는다고 했다. 그만큼 사실적으로 스타트업의 현실적인 모습을 잘 담아낸 책이다. 경영자와 제작자 사이의 생각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나지만 두 입장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점도 책의 재밌는 특징 중 하나이다. 이 책을 시작으로 게임 제작 과정, 게임 시장, 게임 역사, 재미란 무엇인지, 게임 서버 프로그래밍을 비롯한 지식들을 찾아볼 예정이다.